나의견해

이렇게 강팀이 된다.

CICCIT 2019. 8. 14. 15:37

트윈스가 달라졌다.

팀 전체에 여유가 느껴진다.

막연히 잘 해야 한다는 당위로 생기는 여유가 아니다.

 

조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결국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 8월 10일 토요일 SK전 6회 1대 0, 무사 1루 김용의 타석

 

박용택, 채은성이 빠지고 페게로의 타율이 올라오지 않자,

주중 NC전부터 페게로의 타순을 조정하기 시작한다.

 

전일부터는 아예 6번 지명타자로 출전시키며 부담을 줄여주는데

그 과정에서 백업 멤버들인 양종민, 김용의가 1루수로 출전하게 되는데

 

이 날은 김용의가 1루수 2번타자로 선발출장하였다.

 

산체스의 구위에 막혀 한 점도 못 냈지만

켈리의 호투로 한 점차 박빙 승부.

 

6회 들어 이 날 처음으로 선두타자인 이천웅이 안타를 치고 출루에 성공한다.

 

무조건 동점을 만들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고

다음 타자가 김용의인 것을 감안하면

희생번트의 확률이 100%에 가까운 상황이다.

 

초구 김용의 번트 시도가 파울로 들어가고 이어지는 두 번째 공.

 

산체스의 직구가 살짝 높은 코스로 들어오자

번트 모션을 취하던 김용의의 방망이가 매섭게 돌아간다.

 

결과는 파울.

 

김용의의 독자적 판단에 따른 버스터?

 

아니다. 

 

이미 2루에 도착해있는 1루 주자 이천웅을 보건대,

벤치에서 런앤히트 싸인이 나온 것이다.

 

이 상황에 런앤히트라니?

희생번트로 안전하게 2루에 보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한다면

실패로 끝난 작전에 대한 결과론일 뿐이다.

 

상대는 보내기번트 이외의 옵션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포수는 한 가운데 직구를 요구했고

내야수들은 번트 수비하러 뛰어들어오기 바빴으며

투수는 번트를 대주기 위해 높은 스트라이크 코스에 가볍게 직구를 넣었다.

 

이 날 산체스의 속구 중 가장 느린 147km의 직구가 

높은 스트라이크 코스로 날아왔다.

 

결과는 파울이었지만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간파하지 못했다면 나올 수 없는 작전.

 

지난 일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파울이 되지 않았다면 안타가 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고

안타가 되었다면 무사 1, 3루.

 

그래도 희생번트로 2루에 보내서 일단 동점을 만들었어야 했다고?

 

마운드에 산체스,

불펜에는 좌완 김태훈, 우완 서진용, 마무리 하재훈이 대기 중이었고

다음 타선은 클린업 트리오.

 

6번타자 페게로는 당시는 계산이 서지 않았던 타자이고

7번타자는 김민성이지만

오지환이 탈수증세로 빠지면서

8번타자가 윤진호, 9번타자가 정주현.

 

백업 내야수 중 김용의, 윤진호가 선발 출장했기 때문에

8, 9번 타선에서 쓸 수 있는 대타도 한정적이다.

 

전민수, 양종민을 8번, 9번에 대타로 쓰고

양종민을 2루로,

전민수를 외야로, 

김현수를 1루로,

김용의를 3루로 쓰는 방법을 쓸 수도 있겠으나

그 경우에도 김민성을 유격수로 써야 하는 무리가 따른다.

 

8번, 9번 중 한 타자 정도 밖에 대타를 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고

그렇다면 타선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김현수 앞에

최대한 주자를 쌓아 찬스를 만들지 않고는 승부를 걸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당연한 작전이었지만

상대 벤치가 이토록 디테일하게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염갈량으로 칭송받는 상대 감독도 이를 놓친 듯 했고

그 순간 런 앤 히트가 결행되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산체스의 느린(?) 직구,

상대 내야진의 번트에 대한 확신,

경기 후반에 비슷한 찬스가 다시 또 클린업에 걸릴 확률을 확신하지 못하는 타이밍,

이 모든 것을 감안한 벤치의 결행 등

모든 조건이 어우러진 멋진 작전이었다.

 

 

#2 8월 13일 8회초 7대 6, 무사 1, 3루 9번타자 김혜성 타석

 

이 장면은 많이들 봤을 것 같은데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다.

 

이 상황이 어떻게 정리되느냐에 따라

이 날 경기를 누가 이기느냐가 정해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

 

키움에서는 당연히 1루 주자 이지영을 빼고 대주자 박정음을 기용한다.

박정음은 대놓고 도루를 하겠다는 뜻이지만

도루를 한다해도 3루 주자를 견제하느라 딱히 막을 방법도 없다.

3루주자가 비교적 느린 박동원이니 

2루에 승부한다고 해도 잡을 확률은 높지 않아 보이는 주자가 박정음.

 

그럼 어떤 수비를 해야 할까?

한 점을 주고 병살로 막든지,

전진 수비를 해서 한 점도 안 주는 수비를 하든지 해야 할텐데

병살 유도는 타자 김혜성도 워낙 빨라 쉽지 않아 보이고

전진 수비는 실패할 경우, 또다시 무사에 주자가 두 명이 되는 위험부담이 크다.

 

이런 때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의외의 답이 있다.

상대방은 어떤 상황일까?

한 점차에 무사 1, 3루라면 동점은 기본이고 역전을 못하면 억울할 상황인데

박정음이 횡사하면 역전 주자가 사라지게 되니

박정음이 도루를 감행한다면 무조건 성공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박정음이 도루에 성공하면

안타 하나로 역전을 할 수도 있을뿐더러

무사이기 때문에 안타 없이 외야 플라이 두 개로 역전에 성공할 수도 있다.

여하튼 발빠른 대주자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니

키플레이어는 결국 3루에 있는 박동원이 아니라 1루에 있는 박정음이다.

 

도루에 성공하는 방법은 투수의 타이밍을 뺏어

최대한 빨리 2루에 도달하는 것이다.

 

투수의 타이밍을 뺏는다는 걸 무얼 의미하는가?

투수가 투구에 들어가려면 발을 들었다 내려놓으며 힘을 모으는 과정을 거치는데

발을 들었을때 무릎이 홈을 향하면 주자를 향해 견제하면 보크이다.

 

그래서 1루주자를 마주보고 있는 좌완투수의 경우에

간혹 다리를 들어도 무릎을 1루로 향하면서 견제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완투수는 1루주자를 등지고 있기 때문에 

발을 들었다가 1루에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전문 대주자로 뛰어본 경험이 많은 박정음이 이를 몰랐을 리 없고

우완투수 여건욱이 발을 들자마자 박정음은 2루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여건욱은 무릎을 홈으로 돌리지 않으며

볼을 홈이 아닌 3루로 던진다.

 

1루주자의 스타트를 알고 있었던 3루주자는 경우에 따라 홈으로 뛸 생각도 하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3루로 귀루하지만

3루수는 3루주자에는 관심도 없다는듯,

투수의 공을 받자마자 2루로 던져 도루하던 1루주자를 잡아버린다.

 

단숨에 무사 1, 3루가 1사 3루가 되는 순간이었고

다음 타자의 외야 플라이로 동점을 허용하지만

역전을 당할래야 당할 주자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1루주자가 그대로 도루에 성공했다면

7대 7 동점 때 3루로 뛰어

1사 3루에 김하성을 맞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위 두 가지 케이스는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상대방의 상황과 흐름, 움직임을 읽고 

그것을 역이용했다는 것이다.

 

역이용 당하지 않은 것만도 감사한 트윈스가

리그 1, 2위 팀을 상대로 상황을 역이용하는 걸 본지가 언제인가?

 

마지막 김민성의 끝내기 인터뷰에서도

아 우리가 강팀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확신이 되어간다.

 

 

'자동고의사구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1루가 비어있기 때문에

어렵게 승부할 걸로 봤고 스트라이크 존을 좁혀서 공격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작년과 올해

 

뭐가 달라져서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었을까?

 

차 단장의 앞날이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