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중국보다 우리한테 인기가 더 많아 보이는 삼국지연의.
왜 그럴까?
명나라가 청나라에게 망한 후,
조선은 이제 남은 예의지국, 주자학의 나라는 조선 뿐이라는 소중화사상에 빠진다.
명이 없어지고 오랑캐가 중국을 먹었으니
주자학의 적통을 이어받은 예의 나라는 조선 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다.
세상에 이렇게 병맛 같은 자기 합리화가 또 있을까?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 뒤쳐지지 않게 노력하기는 커녕,
가공해낸 자뻑에 취해 과거에 머무르려는 거다.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라 칭함)는 삼국 중 가장 약하지만
한나라의 적통을 이었다고 주장하는 유비와 촉한을 중심으로
삼국시대를 기술한 소설이다.
굳이 소설이라 하는 이유는 작가 맘대로 가공된 내용이 너무 많기 때문.
삼국지는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로 시작한다.
애초에 형제가 아닌 세 사람이 만나 혈육보다 더 진한 의리를 보인다.
항상 의를 중시하고 예에 맞게 행동하는 이야기는
한의 적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충분히 감동적인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고
주자학의 나라, 소중화사상에 빠져있던 조선에게 딱 맞는 이야기였으리라.
그런데 우리는 삼국지를 얘기하고 의형제의 죽음을 원통해 하지만
촉한이 왜 흥하고 왜 망했는지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촉이 언제 흥했고 언제 가장 위험에 빠졌는가?
촉이 흥하기 시작했던 순간은 삼고초려가 아닐까 한다.
삼강오륜이 중심인 유교 사상과 삼고초려는 사실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군위신강, 장유유서 등과도 전혀 맞지 않는다.
유비는 자기보다 훨씬 어리고 사회적 경험도 없는 제갈공명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씩이나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관우와 장비조차 이런 유비를 머뜩치 않아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와 배경, 나이를 고민하지 않고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젊은 촌부에게 머리를 조아렸던 유비의 용기는
지방 토호에 불과했던 그를 삼국 중 하나의 황제 자리로 이끈다.
그럼 촉은 언제부터 망하기 시작했을까?
관우가 오와 위에 동시에 맞서다가 오의 손에 죽으면서부터가 아닐까?
제갈공명은 관우에게 형주를 맡기며 동화북당의 네 글짜를 적어준다.
동화, 동쪽의 오와 화친하고
북당, 북쪽의 위와 맞서라.
촉은 얼마만큼의 힘을 갖고 있던 나라인가?
당시 위-촉-오 삼국의 국력은 5-3-2 정도로 보는 게 중론이다.
제갈공명은 이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동화북당을 적어준 것이다.
위와 화친해서 오를 공격하면 삼국의 균형은 무너진다.
위는 오를 멸망시키면 반드시 그 다음 촉을 노릴 것이다.
그러나 오와 힘을 합하면 위에 맞설 수 있고 오는 자기 힘만으로 딴 마음을 먹기엔 국력이 약하다.
이런 상황을 제갈공명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관우에게도 동화북당이라는 네 글짜를 적어준 것이다.
그러나 관우는 자기의 용맹을 믿고 위와 오를 동시에 강경하게 대했고
결국 오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다.
유비 또한 관우의 죽음을 보고 복수심에 불타
제갈공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군사를 일으켜 동오를 공격하고
그 준비과정에서 울분을 못 이겨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다 장비마저 부하의 손에 죽고 만다.
결국 유비도 동오와의 전쟁에서 죽게 되니
촉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촉은 여러모로 조선과 비슷하다.
자기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게 그러하고
자뻑에 취해 주위 대국을 우습게 보는 게 그러하다.
한국은 조선을 뒤로 하고 눈부신 발전을 이뤄낸 나라이지만
우리가 왜 잘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없이
다만 우리가 잘났고 그럴만하다는 자뻑에 취해있는 게
조선의 티를 완전히 벗지는 못한 나라이다.
한국이 흥한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시대가 미국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 부문에서 대외의존도가 높았던 미국은
자국을 돌리기 위해 세계의 여러문제에 관여할 수 밖에 없던 나라이다.
아랍에도, 동북아에도 적극적으로 국제 문제에 개입하는 미국.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는 것은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 때문이다.
아랍을 비롯한 산유국의 적극적인 관리는 물론이고
대규모 가스를 생산하는 러시아,
아랍에 직접 송유관을 설치하려는 중국 등을 적절히 관리하기 위해
동북아에서의 영향력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함으로써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
그러기 위해서 한국과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를 충분히 견제할만한 세력이 되어야 했고
한미일 동맹은 동북아에의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시키는 든든한 배경이었다.
자국의 이익이 관련되지 않으면 당연히 미국은 최대한 발을 빼려고 할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중국을 우습게 보고 일본을 깔봐도
그들이 우리를 맘대로 하지 못 했던 이유는 단 하나, 우리 뒤에 미국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국제 정세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미국에서 셰일혁명이 일어난 것.
이제 미국은 더 이상에 아랍에 관여할 이유가 없어졌고
중국과 러시아를 동북아에서 견제할 이유도 사라졌다.
당연히 미국은 아랍에서, 동북아에서 점차 발을 빼려할 것이고
그러면 2차대전 이후, 한반도를 지배했던 중요한 대전제.
'우리 뒤에 미국이 있다'는 대전제가 사라진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발을 빼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건 우리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조선의 역사를 보아라.
조선은 그들을 오랑캐라 불렀지만
그것은 조선의 자뻑이었을 뿐,
그들은 우리와 비교할 수도 없는 힘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었고
호시탐탐 조선을 노렸다.
중국, 일본, 러시아와 북한, 남한만이 남게 되면
북한은 원래 그랬듯 중국의 영향력 하에 굳건한 동맹관계를 앞세울 것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대놓고 남한을 우습게 보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의 갈 길은?
좋으나 싫으나
동화북당
밖에 없다.
감정에 치우쳐 동쪽에 복수심을 불태우면 모두 죽을 것이고
동화북당
동과 화친하여 북에 맞서는 것만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그토록 좋아하는 삼국지연의의 제갈공명이 우리의 가야할 길을 말해주고 있다.
역사에 순응할 것인가?
역사를 거스르고 필부의 욕심을 부르짖으며 이 나라의 백성들을 또다시 개죽음에 이르게 할 것인가?
전자를 선택했으면 하는 마음이나
우리나라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우리는 관우처럼 예를 알고 의를 행하는 민족이니까.
아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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