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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이다. 김정은은 동해 상으로 미사일을 쐈다. 그게 35분인가를 날아서 대기권을 벗어났다가 다시 내려왔단다. 그 정도면 전세계 어디에도 타격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북한국영방송에서 중대 발표도 하시고 아주 난리블루스이다. 이 메세지가 우리가 아닌 미국에 던지는 메세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7월 4일이라는 날짜를 택했겠지......

 

임진왜란 때 가장 유명한 얘기는 선조가 일본에 사신을 보냈는데 황모모(이름이 생각 안 남;;;;)가 사신단의 정사, 김성일이 사신단의 부사였고 둘은 서로 동인, 서인 당파가 달랐다. 그래서 일본에 다녀와서 둘 중 하나는 전쟁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으나 다른 하나는 별로 걱정할 게 없다고 했단다. 그래서 당파싸움 때문에 준비를 못 했다고 하는데 사실 전쟁 위험의 의견이 반이면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는 게 정상아닌가? 뭐 암튼 싸우다 망했다는 이야기이다.

 

병자호란 때 가장 유명한 얘기는 광해군의 실리 외교인데 광해군이 잘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인조 반정으로 망했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뭐 광해군이 훌륭한 임금이었냐면 훌륭은 개뿔, 연산군만큼은 아니지만 충만한 똘끼를 보여준 임금이었단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덜 알려졌지만 병자호란 때 더 중요했던 얘기는 주화파(청이랑 화친하자)와 척화파(청이랑 싸우자)의 대립이었다. 이 때 주화파에 최명길이라는 정치인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싸워야 한다면 왕이 직접 압록강에 나아가 싸우면서 아니다싶으면 바로 화친해서 피해를 최소화 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이후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아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엄청나게 현명한 사람이었지만 ... 우리가 누구? 현실주의자를 배척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민족 아닌감? 심지어 그 때는 의리와 대의명분이 몇 배는 더 심했을테니... 최명길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척화파인 김상헌의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결국 인조는 삼전도에서 머리를 조아렸고 한반도는 쑥대밭이 되었다.

 

더 웃긴 건 그 이후,,, 최명길은 어찌되었는지 역사에 잘 나오지도 않지만 김상헌은 오랑캐에 굴복하지 않은 애국 선비(?)의 대명사가 되었고 효종 시절 말도 안 되는 북벌 쇼로 그런 이미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결국 후대에 안동김씨가 세도정치를 열어제끼는 데에 좋은 배경이 되었다. 이게 뭥미;;;;;

 

구한 말은 사정이 좀 달랐다. 우리나라가 힘이 가장 없었다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임진왜란의 명, 왜, 병자호란의 명, 청을 넘어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러시아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존의 청, 일 외에 서구 5개국까지 모두 7개국이 영향을 끼쳤지만 이해관계는 제각각 달랐다. 기존의 청, 왜 등은 우리를 굴복시키고 자기네 속국화하는 게 목표였지만 미, 영, 프, 독, 러시아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일본은 그러한 국제 정세를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으면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갔다. 원래 러시아는 일본에 넘어가는 것만 막겠다는 정도였고 중립화해도 좋다...는 생각이었으나 일본은 그렇다면 러시아와 일전을 불사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었고 결국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며 조선을 합방하게 된다. 고종은 러시아와 가깝게 지내며 서구 국가들에게 여러가지 이권을 나눠주며 열강들이 서로 견제하게 해서 중립국이 되는 꿈을 꿨던 듯 하나 힘없는 국가가 다른 국가의 힘으로 중립국이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깨달았을 뿐이었다.

 

그럼 2017년은 어떠한가?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어떤 국가가 되고자 하는가? 자주국가? 자주는 밖에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우리는 GDP기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1950년 한국 전쟁 이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여기까지 오게 된 원동력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의 번영은 우리 힘으로 이룬 것일까?

 

높은 교육열과 우수한 인적자원, 민족적 긍지, 인내력 등이 그 이유라면 틀렸다. 아니 맞을 수는 있지만 메인팩트는 아니다. 이것이 메인팩트라면 북한도 우리만큼 잘 살고 있어야 한다. 북한에 없는데 우리에게 있었던 것? 그렇다. 그것은 바로 미국이다. 우리에게 있어 미국이 절대 선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냉전시대였고 미국은 소련의 남하를 막아야 했다. 시작은 그랬는데 서서히 중국이라는 거인도 일어서기 시작했다. 소련과 중국을 동시에 막으려면 한국-일본의 힘이 미국에게도 필요했다.

 

거기에 중국의 문화대혁명도 있었다.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제조업 경쟁력이 바로 1등을 먹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월등한 국토와 인구를 갖고 있는 나라이다. 사실 원래 장사하면 중국인이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나라가 경제를 개방하고 뛰어들었으면 우리가 설 자리는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중국은 문화대혁명이라는 삽질을 하느라 골든타임을 놓쳤다. 그동안 우리는 제조업 강국이 되었고 뒤늦게 중국이 경제를 개방하였지만 이미 우리와의 격차는 벌어진 이후였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우리의 번영에 있었던 메인 팩트 두 개가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다. 그래서 앞으로도 잘 살려면 미국에 사대주의를 하고 중국을 운빨에 맡기자...는 게 아니고 이제까지는 운이 좋아 여기까지 잘 왔는데 앞으로는 운이 아닌 실력으로 지금의 번영을 계승,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보자는 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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